사춘기 시절 라디오를 끼고 살면서도 엽서 한 번을 안 보냈다. 그때는 <예쁜 엽서 전시회> 같은 걸 빈번히 열 정도로 라디오 청취자 엽서 문화가 활발하던 때였는데도 말이다. 그 당시의 나에게 편지 쓰는 취미도, 그림 그리는 취미도 꽤 있었지만, 친구들하고는 주고받아도, 그런 데 보내지는 않았다.
예전에도 지금도, 나는 덕후 기질이 약하고 덕질에는 더더욱 관심이 없다. 좋아하는 가수가 생겨도 그냥 음반을 사는 정도에 그쳤고 그 흔한 브로마이드(대형 사진) 한 장 구입하는 일이 없었다. 가수 개인사에도, 특별히 재미있는 이야기가 있지 않는 한, 큰 관심이 생기지는 않았다.
그런 무심함은 공연에 대해서도 마찬가지였다. 그러다 보니 라디오를 매일 들으면서도 공개 방송 한 번을 안 갔다. 라디오와 음악은 내 생활의 배경이면 충분했지, 그들을 위해 내 감각을 오롯이 집중하기는, 시간이 아까웠다. 일대 다의 관계 같은 건 관심 없는 성격이라 그런지 모른다.
그래서인지 난 점차 멘트는 거의 없고 길고 강력한 음악을 줄줄이 틀어주는 방송에 집중하기 시작했다. 그건 바로 밤12시부터 전영혁이라는 디제이가 진행하는 라디오였는데, 아트록과 프로그레시브 록을 주로 틀었다. 고등학교 때까지는 그냥 늦게까지 공부할 때만 들었지만 대학교에 들어가고 취침 시간이 늦어지자 더 자주 듣게 되었다.
그래도 잠이 들어버려 못 듣는 일이 많자, 나는 카세트 라디오에 공테이프를 넣고 녹음을 해두기 시작했다. 녹음 테이프 하나는 한 면에 30분씩 양면에 1시간의 녹음을 할 수 있었다. 하지만 방송이 2시간으로 늘어나면서 나는 상가들을 헤매 다니며 2시간짜리 공테이프를 구매했다. 녹음기의 오토리버스 기능을 이용하면 중간에 약간은 끊기더라도 두 시간의 음악 방송을 낮 동안 내내 반복해서 들어볼 수 있었다.
이른바 마이마이라는, 이동성 테이프 재생기에 그 두 시간짜리 녹음 테이프를 넣고 이어폰을 낀 다음 학교를 오가는 버스 안에서 듣고, 걸으면서 듣고, 도서관에서 공부하는 동안 내내 들었다. 내 청춘의 진정한 배경 음악이 있다면 사실상 전영혁의 라디오 프로그램이었다.
그런데 얼마전 같이 글쓰기 모임을 하는 친구가 바로 그 전영혁에 대한 글을 썼다. 방송에 엽서를 보내서 개인적으로도 만나게 된 사연이었는데, 있을 법한 일이긴 했지만 완전히 남의 일 같으면서도 전혀 남의 일 같지 않아서 꽤나 흥분하며 호응해 주었다. 평행 우주 속 자아의 대리 체험이라고나 할까.
생각해보면, 내가 라디오를 그저 듣기만 했던 건, 누군가를 숭배하는 취향이 아니기 때문인 것 같다. 대중의 한 사람으로 카리스마 있는 지도자나 예술가를 인정은 할망정, 그나 그녀를 위해 무료 봉사하는 건 적성에 맞질 않았다. 뭔가를 만들어내는 사람보다는 그 사람이 만들어내는 결과물이, 그게 예술 분야라고 하면, 예술가보다는 예술 작품이, 그것들의 축적이 만들어내는 역사의 파악이 더 나의 관심을 끌었다.
'가족 대신 라디오' 카테고리의 다른 글
영어 교육 방송의 스타들 (3) | 2024.11.14 |
---|---|
캠프의 시작 (0) | 2022.08.13 |
처음 만난 별밤 (0) | 2022.08.08 |